RM도 반한 '달동네'…한지로 표현한 情

입력 2022-08-01 17:13   수정 2022-08-02 00:25


드문드문 이가 빠진 기와지붕, 금 간 시멘트벽, 녹슨 대문…. 달동네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시간은 밤이지만, 어둡지 않다. 좁은 골목마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캔버스 위에 한지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주름진 한지는 판잣집이 지닌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고, 한지 위로 스며든 물감은 가로등 빛이 돼 달동네를 비춘다.

지난달 27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정영주 작가(52·사진)의 개인전은 이 같은 달동네 그림 28점으로 가득 차 있다. 정 작가는 요즘 미술시장에서 ‘핫한’ 작가다. 2020년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정 작가의 작품을 구매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았다. 지난 5월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인 홍콩 아트바젤에선 출품작이 ‘완판(완전판매)’됐다. 이번에도 전시회가 열리기도 전에 일반에 판매하지 않는 한 점을 빼고 모든 작품이 팔렸다.

정 작가가 달동네를 그리기 시작한 건 2008년 무렵이다. 1997년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그는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작가로서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시점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이후 10년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림은 뜻대로 그려지지 않고, 지인들은 떠나가고, 돈마저 떨어졌다.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을 때 그의 눈에 달동네가 들어왔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들은 도시의 화려한 빌딩과 비교돼 마치 작가 자신 같았다. 동시에 따뜻함을 느꼈다. 어릴 적 달동네에서 살았던 그에게 고향과도 같았다. 초라하지만 가족의 온기와 고향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가 캔버스에 달동네를 담기 시작한 이유다.

이번 개인전의 타이틀이기도 한 ‘어나더월드(Another World)’는 200호(가로 259㎝, 세로 194㎝) 초대형 캔버스에 이런 달동네 모습을 담았다. 서로 기대며 의지하고 있는 판잣집과 따뜻한 가로등 덕분에 달동네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감싸 안아주는 보금자리로 묘사된다. 그림 속 달동네는 상상 속 공간이다. 작가가 유년기에 살던 부산과 서울 달동네를 참고했지만, 전체적인 풍경은 상상해서 그렸다.

그는 종이를 찢어 붙이는 ‘파피에 콜레’ 기법을 사용했다. 밑그림에 맞게 한지를 오려내서 꽉 구긴 후 다시 펴서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덧대는 방식이다. 한지라는 전통적 소재가 작품의 향토적 정서를 더한다.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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